캘린더 앱 하나, 할 일 앱 하나. 오랫동안 그 조합으로 지냈다. 일정은 캘린더에, 해야 할 일은 목록에. 대부분 그렇게 쓴다. 도구를 자주 갈아치우는 편도 아니어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허전했다. 둘 다 제 역할은 하는데, 정작 남아야 할 게 어느 쪽에도 남지 않았다.
할 일 앱은 이름 그대로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적어두는 곳. 적고, 하고, 지운다. 그 역할은 충실히 했다. 문제는 지우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거였다. 한 달 내내 체크를 지웠는데, 월말에 뭘 했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기록은 분명 있었는데 남은 게 없었다.
캘린더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구글 캘린더에 그날 있었던 일을 적기 시작했다. 일정 칸에 일정이 아닌 걸 적은 셈이다. 오늘 뭘 했고, 어떻게 됐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처음엔 괜찮았다. 적어도 지나간 시간이 눈에 보였다. 한 주를 펼치면 그 주에 내가 뭘 하며 살았는지 어렴풋이 읽혔다.
오래가지는 못했다. 캘린더는 앞을 보는 도구다. 언제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두는 곳이지, 지나간 일을 쌓아두는 곳이 아니다. 하루치 생각을 한 줄짜리 일정 제목에 우겨넣는 것도, 그렇게 넣은 기록을 나중에 다시 찾아 읽는 것도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도구를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고 있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사람을 지치게 한다. 억지로 꿰맞추고 있다는 걸 알면서 계속하기는 어렵다.
정작 필요한 건 사이에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게 뭔지는 분명해졌다.
할 일 목록은 앞만 본다. 지금 급한 게 뭔지는 알려주지만 그게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 일기나 기록은 뒤만 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남지만 그게 지금 하려는 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정작 중요한 것들, 그러니까 이 일을 왜 하기로 했는지, 하고 나서 어떻게 됐는지, 그때 나는 어땠고 다음엔 뭘 다르게 할 건지는 양쪽 어디에도 자리가 없었다.
이건 원래 하나의 흐름이다. 어떤 상황이 있었고, 그래서 할 일이 생겼고, 해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고, 나는 이렇게 느꼈다. 그런데 도구를 쓰는 순간 이 흐름이 토막 났다. 앞부분은 캘린더에, 가운데는 할 일 앱에, 뒷부분은 어디에도. 그러면 조각을 다시 이어붙이는 일은 결국 내 머리가 해야 하는데, 사람의 기억력은 그 일에 전혀 적합하지 않다.
찾아봤다. 메모 도구는 자유로운 대신 구조가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쌓이기만 했다. 프로젝트 관리 도구는 구조가 확실한 대신 개인의 하루나 감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둘을 붙여 쓰는 방법도 시도해봤지만, 도구를 두 개 쓰는 순간 흐름은 또 끊겼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흩어지지 않는 한 개의 체계
만들면서 정한 원칙은 하나였다. 기록끼리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Life OS에서 기록은 여섯 종류로 나뉜다. 실제로 이루려는 것(과제), 오늘 손을 움직여야 하는 일(할 일), 떠오른 생각과 메모(생각), 그날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상태였는지(상황), 사람과 그 사람에 얽힌 맥락(관계), 그리고 주기적으로 되돌아본 결론(회고).
중요한 건 여섯 개로 나눴다는 게 아니라 이것들이 서로 걸려 있다는 점이다. 오늘 적은 할 일은 어느 과제에 속해 있고, 그 과제는 지난주 어떤 상황에서 시작됐고, 거기엔 특정한 사람이 얽혀 있고, 한 달 뒤 회고에서 그 전부가 한 번에 불려 나온다.
바뀐 건 딱 하나다. "이걸 왜 해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이 준비되어 있다. 3주 뒤에 목록을 다시 열어도 그 할 일이 왜 거기 있는지 안다. 그리고 다 지우고 난 뒤에도 남는 게 있다.
AI에게 요약을 시키지 않기로 했다
여기까지 만들고 나니 다른 게 가능해졌다.
요즘 생산성 도구는 대개 AI를 붙인다. 그런데 하는 일은 비슷하다. 긴 글을 짧게 만들어주거나 문장을 다듬어준다. 편리하긴 해도, 결국 방금 내가 입력한 것을 다시 정리해주는 일이다. 도구는 여전히 나를 모른다.
맥락이 한곳에 모여 있으면 물어볼 수 있는 게 달라진다. 이번 달에 세 번이나 미룬 이 일은 왜 계속 밀리고 있는지. 컨디션이 나빴던 날들에 공통으로 있던 게 뭔지. 올해 여기에 시간을 쓰겠다고 해놓고 실제로 쓴 시간은 얼마인지. 이런 건 요약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할 일과 상황과 사람과 목표가 같은 자리에 있어야 나온다.
그래서 매일 아침의 브리핑, 하루 뒤의 피드백, 월간과 연간 회고를 전부 이 전제 위에 올렸다. AI에게 문서 하나를 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쌓인 맥락을 준다.
한 가지 안 하기로 한 것도 있다. "3번 미뤘습니다, 미루지 마세요" 같은 기계적인 잔소리는 만들지 않는다. 조건문으로 만든 알림은 두 번째부터 무시당한다. 판단은 전부 실제 기록을 읽고 하게 했다.
요즘은 더하는 대신 걷어내고 있다
필요한 건 대체로 다 들어갔다. 여섯 종류의 기록과 그 연결, 매일의 브리핑과 피드백, 코치 피드, 월간·연간 회고 자동 생성.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를 지원하고 휴대폰에 설치해서 앱처럼 쓸 수 있다.
그래서 요즘 하는 일은 새 기능을 붙이는 게 아니다. 매일 직접 쓰면서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있다.
만들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막상 몇 주 동안 한 번도 열지 않은 화면이 있다. 두 번 누를 이유가 없는데 두 번 누르게 되어 있던 자리도 있다.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넣었지만 실제로는 판단만 늦추던 옵션도 있었다. 그런 걸 하나씩 찾아서 지우거나 합친다. 기능이 하나 줄 때마다 흐름이 조금씩 매끄러워지는 게 눈에 보인다.
이게 가능한 건 만든 사람이 매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이 쓰는 걸 지표로만 보고 있으면 무엇을 빼도 되는지 알기 어렵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대신 오늘 걸리적거린 걸 이번 주에 없앨 수 있다.
물론 다 됐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매일 쓰다 보면 걸리는 데가 계속 나온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쓰는 동안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도구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여기에 쓸 것
이 블로그에는 자기관리에 대해 알게 된 것들, Life OS를 실제로 쓰는 방법, 그리고 만들면서 겪는 일들을 쓰려고 한다. 잘된 결정만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첫 글은 여기까지다.
혹시 지금 쓰는 도구가 어딘가 어긋난다고 느낀다면, 새 앱을 찾기 전에 한 번 확인해보길 권한다. 오늘 목록에서 아무 할 일이나 하나 골라서, 그게 왜 거기 있는지 바로 답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일을 지우고 난 뒤에 뭐가 남는지.
답이 잘 안 나온다면, 아마 앱을 바꿔도 같을 것이다.
Life OS는 할 일과 과제, 생각, 하루의 상황, 사람, 회고를 하나로 이어 기록하고, AI가 그 전체를 읽고 브리핑과 코칭을 해주는 개인용 서비스입니다. → life-os.cloud
